동물 해방
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 요약. 동물권 운동을 촉발시킨 초기 저작 중 하나로 평가 받는 책이다. 국내에선 싱어의 주장이 시혜주의적이라거나 온건한 동물복지론에 그친다는 등의 여러 오해를 받고 있는 것 같아서 아쉽다.
번역에 대해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 중 하나는 고려consideration이다. ‘동등 고려equal consideration’, ‘동등 고려의 원칙principle of equal consideration’ 등 매우 자주 나오기도 하고. 번역서에서는 1장 뿐 아니라 본문 전체에 걸쳐 “고려”와 “배려”로 섞어서 옮기고 있는데, “배려”라는 단어가 나오면 거의 모두 “고려consideration”로 바꿔 읽길 권한다. 그리고 “동물에게 혜택을 베풀다” 같은 시혜적 표현이 나오면 번역문에서 지나치게 의역한 것이거나 원문에는 없는데 임의로 삽입된 표현인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판본
6개 판본이 있다. 초판은 1975년에 나왔고, 2015에 40주년 기념판, 2023년에 “Animal Liberation Now”라는 제목으로 완전 개정판이 나왔다.
2023년 개정판은 상당히 많이 바뀌었다. 큰 흐름이나 주요 문장들은 남아 있지만 상당수의 문장이 바뀌고(대체로 간결해지거나 삭제되었다), 새로운 연구나 사례들이 많이 추가되었다. 4장은 제목도 바뀌었는데 원래 “채식주의자 되기 becoming vegetarian”였는데 개정판에선 “종차별 없이 살아가기 living without speciesism”가 됐다. 식생활 뿐 아니라 삶의 양식 전반의 변화를 포괄하는 제목이다.
2023년 개정판에 실린 유발 하라리의 추천사
2015년에 쓰인 추천사인데 2023년 개정판에 “Introduction”이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석기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환경에 미친 악영향을 언급하며 시작.
석기시대:
- 45,000년 전 인간이 호주에 처음 정착했을 때 대형 육상 동물의 90%가 멸종
- 15,000년 전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했을 때 대형 포유류의 75%가 멸종
- 그 외에도 여러 지역의 고고학 기록에서 비슷한 사례가 반복됨.
- 신석기 혁명 이전에 이미 전 세계적으로 대형 육상 포유류의 50%를 멸종시킴.
다음은 신석기 혁명기. 가축화가 시작된다. 오늘날 대형 동물의 90% 이상은 가축. 야생 상태의 동물도 여러 고통과 비극을 겪지만 가축화 이후 새로운 종류의 고통을 겪기 시작했으며 이는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현대에는 전통적 축산이 산업화되면서(공장식 축산) 더욱 잔혹해진다. 현대 과학이 바이러스에 대해 알게 되고 항생제, 백신, 호르몬제, 살충제, 자동 사료 배급기 등 온갖 기술을 개발하기 시작하면서 더 좁은 공간에 더 많은 동물을 몰아넣고 ‘생산성’을 극도로 높였다. 오늘날 ‘축산 동물’의 총 무게는 약 7억톤에 이른다. 인간의 총 무게는 약 3억톤, 대형 야생 동물(수 kg 이상인 동물들)의 총 무게는 약 1억톤 미만이다.
이 통계와 책의 주장에 따르면, 공장식 축산은 인류 역사상 모든 전쟁을 합친 것보다 더 큰 고통과 비극을 초래하고 있다.
2023년 개정판 서문
1975년 초판이 나올 당시와 비교하여 상황이 많이 나아졌으나 제도적 개선은 미국의 극히 일부 주와 유럽의 국가들 등으로 국한되어 있다고 한다.
중국의 ‘동물 생산’이 크게 증대되었고 현재 세계 최대의 돼지 ‘생산’ 국가이고, 닭과 오리도 대량으로 ‘생산’하고 있지만 거의 아무런 복지 관련 규제가 없다는 문제를 지적한다. 이 글을 쓸 당시 중국은 26층 높이에 각 층이 400,000 평방미터에 달하는 대규모 축산 시설을 짓고 있었다. 완공되면 수백만 마리의 돼지를 수용하게 된다고.
초판을 쓸 당시에 비해 동물의 의식경험 및 심리적/신체적 필요에 대해 훨씬 많은 걸 알게 되었고, 온실 가스가 기후 변화에 미치는 영향 및 축산업/낙농업의 온실 가스 배출량이 교통 및 운송 분야 전체의 배출량과 비슷하다는 점 등도 잘 알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동물권 운동의 근거가 더욱 강화되었다고 주장한다.
초판 서문
첫 문장:
이 책은 비인간 동물에 대한 인간의 폭압에 대한 책이다. …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게 크게 과장된 선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5년 전엔 나도 이 문장을 보고 웃었을테지만, 완전히 진지하게 쓴 글이다. 5년 전의 나는 내가 지금 알고 있는 사실들을 모르고 있었다.
저자는 동물권 운동을 하는 것과 동물 애호는 관련이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흑인에 대한 차별을 반대하는 사람이 흑인을 사랑할 필요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
나는 동물을 “사랑”하는게 아니다. 나는 그저 동물들이 독립적이고 지각 있는 존재로 취급되길, 그리고 동물들이 인간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를테면 돼지의 살덩이를 샌드위치 재료로 소비하기)으로 취급되지 않길 원할 뿐이다.
싱어는 성차별, 인종차별 등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인간 아닌 동물을 부당하게 차별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차별은 우리의 언어 습관에도 뿌리깊게 박혀 있다고 지적. 예를 들면 동물이라는 단어는 일상적인 맥락에서 “인간을 제외한 동물”이라는 의미로 쓰이는데, 이런게 우리의 종차별적 편견을 드러내는 사례라고 지적한다. 이를테면 인간과 침팬지는 챔팬지와 굴보다 훨씬 생물학적으로 가까운데, 우리는 침팬지와 굴을 “동물”로 묶어서 부르고 인간만 따로 나눠서 생각한다.
예전엔 “애완동물pet”이라는 말을 쓰다가 요즘엔 “반려동물companion animal”로 바꿔 쓰는데 이것도 유사한 맥락이다.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살아있는 장난감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동물이라는 의미가 담긴 단어로 바꾼 것.
마지막 문장:
먹기 위해 동물을 기르고 죽이기를 그만둔다면 인간을 위한 식량을 훨씬 더 많이 생산할 수 있을 것이며, 제대로 분배되기만 한다면 아마도 지구 전체에서 굶주림과 영양실조를 없앨 수 있게 될 것이다. 동물 해방은 인간 해방이기도 하다.
제1장.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All Animals Are Equal
1장에서는 왜 동물 해방 운동이 필요한지 설명한다. 싱어는 “불쌍한 동물들에게 우리 인간이 혜택을 주자”는 식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대신, 인간이 현재 동물을 대하는 방식이 부당하고 차별적인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고자 한다.
평등의 기반 The basis of equality
이를 위한 첫 단계로 평등의 개념을 정의한다. 저자가 생각하는 평등이란 ‘똑같은 취급equal treatment’이 아니라 ‘동등한 고려equal consideration’다.
평등의 원칙이 담고 있는 함의는 인간들 사이의 실질적 동등함에 대한 기술(description)이 아니라, 우리가 인간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처방(prescription)이다.
예를들어 남성은 생물학적으로 임신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임신중절권이란 여성에게만 보장될 수 있는 권리이다. 여성에겐 임신중절권이 있고 남성에겐 없어도 차별이 아니다. 이 예시에서 중요한 건 두 가지다. 첫째, 남성과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똑같기 때문에 평등하다고 주장해서는 안된다. 차이가 있건 없건 평등하다고 말해야 한다. 둘째, 평등이란 ‘똑같은 취급’이 아니라 ‘동등한 고려’다.
인종차별 문제도 마찬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어떤 이들은 백인과 흑인은 피부색만 다를 뿐 아무런 근본적 차이가 없으므로 백인과 흑인이 서로 평등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싱어는 이러한 접근에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어떤 집단들 사이에 차이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크고 근본적인 차이가 있더라도 도덕적으로 동등하다고 말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비인간 동물과 인간이 완전히 똑같아야만 동등한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동등한 권리라는건 똑같은 취급(예: 비인간 동물에게 투표권을 보장하기)이 아니다. 이를 동등 고려의 원칙이라고 부른다.
벤담의 물음 Bentham’s question
어떤 이들은 동등 고려의 원칙이 합당하다고 여기면서도 그 고려의 대상을 인간으로 한정하곤 한다. 하지만 제레미 벤담은 고려의 대상이 확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간을 말을 할 수 있다거나 이성이 있다거나 하는 이유로 도덕적 고려의 대상이 되지만 비인간 동물은 그렇지 않다는 식의 구분은 임의적이다. 도덕적 고려의 대상을 정할 임의적이지 않은 기준이 필요하다. 벤담은 “고통suffer을 느끼는가”를 기준으로 제시한다.
쾌락이나 고통을 느끼는 능력을 쾌고감수성이라고 부르고, 쾌고감수성이 있는 존재를 지각이 있는 존재라고 말한다. 어떤 개체에게 쾌고감수성이 있다는 건 그 개체에게 관심사interest가 존재한다는 뜻이며, 관심사가 있다면 그 관심사가 무엇이건 그 개체가 어떤 종에 속하건 상관없이 그 관심사를 동등하게 고려해야 한다. 관심사를 가진 존재이지만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고려의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비인간 동물의 관심사보다 인간의 관심사를 이유없이 더 중요하게 여긴다면 이를 도덕적으로 정당화할 방법은 없다. 이는 종차별이다.
(‘권리’라는 개념에 대한 부연이 이어지는데 이에 대해서는 공리주의 관점에서의 권리 참고.)
쾌고감수성이 있는 존재들 Who can suffer?
인간 외의 동물이 고통을 느끼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저자는 “나 이외의 다른 인간이 고통을 느끼는지는 어떻게 할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고통은 개개인의 의식 경험이기에 인간은 타인의 고통에 대해 객관적으로 알 길이 없다. 이를 타자의 마음 문제라고 부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다른 인간의 외적 상태(표정, 행동, 말 등)만을 관찰한 결과로 그들이 고통을 느끼리라고 확신한다.
다른 동물도 신경학적, 생리학적, 해부학적, 약리학적, 인지적으로 인간과 유사하다면 아마도 고통을 느낄 수 있으리라고 가정하는 게 합당할 것이다. 2012년 의식에 관한 케임브리지 선언에 따르면 인간과 비인간 동물 사이에 많은 유사성이 있으며, 아마도 상당히 많은 동물(무척추동물인 곤충을 포함)이 고통을 경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구분선 그리기 Drawing the line
적어도 일부 비인간 동물이 의식 경험을 한다는 사실에 대해 학계에 이견은 없다. 다만 구체적으로 어떤 종이 의식 경험을 하는지를 놓고 논란이 있을 뿐이다. 동등 고려의 원칙을 어디까지 확장해야 할까?
포유류, 조류, 파충류, 양서류가 의식 경험을 한다는 점은 비교적 명확하다. 척추동물 중 우리가 가장 많이 죽이는 또다른 종으로는 어류가 있다. Do fish feel pain|어류는 고통을 느끼는가의 저자 Victoria Braithwaite에 따르면 어류는 통각수용체를 가지고 있으며 물리적 고통을 가했을 때 전형적인 통증 행동을 보이고 진통제를 주사하면 원래 행동으로 돌아온다. 몇몇 어류는 사냥을 위해 협력 행동을 하는 등 충분히 발달한 인지 능력을 보이기도 한다.
여러 무척추동물(곤충, 문어 등)에 대해서도 유사한 연구가 계속 나오는 중.
함의 Implications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1) 많은 동물들이 고통을 느낄 수 있고, 2) 이들의 고통을 인간의 고통보다 덜 고려해도 된다고 정당화할 수 있는 논리는 없다. 이 결론의 실질적 함의는 무엇인가.
동등 고려의 원칙에 따르면, 각 개체에 차이가 있고 이에 따라 관심사도 다양할테니 유사한 크기의 관심사를 유사한 정도로 고려해야 한다. 문제는 각 종에 따라, 동일한 종이라고 개별 개체가 처한 상황에 따라 관심사가 대단히 다양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떤 종의 어떤 관심사를 얼마나 고려하는 게 ‘동등’한 고려인지 알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하지만 실천적 측면에서 정밀성은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현재 인간이 비인간 동물에게 가하고 있는 고통은 어마어마하게 크지만 그들에 대한 인간의 고려는 너무나도 미미하기 때문에 정밀하게 따져보지 않아도 문제라는 게 명백하기 때문.
부도덕한 살해란? When is killing wrong?
고통의 문제에 동등 고려의 원칙을 적용하기는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쉬운 편이지만, 부도덕한 살해를 규정하는 건 더 복잡하다. 고통의 문제에만 집중해도 이미 공장식 축산을 멈춰야 할 이유가 충분하기 때문에 이 책에서 살해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진 않을 것.
참고: 살해에 대한 피터 싱어의 관점
제2장. 연구를 위한 도구Tools for Research
미국의 경우 USDA에서 실험 동물에 대한 집계를 하고 있는데, 원숭이, 개, 토끼 등 일부만 집계하고 쥐(rats and mice)나 새 등은 포함하지 않는다. 이 집계에 의하면 매년 약 80만 명의 동물이 실험에 ‘사용’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전체 실험 동물의 수를 추정해보면 2018년 기준 미국에서만 1년에 약 1천5백만에서 1억1천만 명 사이의 동물이 실험에 쓰이고 있다.
원숭이를 사이코패스로 만들기 Making monkey psychopaths
ToDo
심리학의 윤리적 딜레마 Psychology’s ethical dilemma
ToDo
학습된 무기력 Learned helplessness
ToDo
독을 먹이고, 눈을 멀게 만들고, 온갖 방법으로 실험하기 Poising, blinding, and other ways of testing on animals
ToDo
의학 실험 Medical experiments
ToDo
조건화된 윤리맹 Conditioned ethical blindness
ToDo
심지어 제대로 된 과학도 아니다 Not even good science
ToDo
실효성 없는 규제 Ineffective regulation
ToDo
동물 실험이 정당한 경우는? When are experiments on animals justifiable?
ToDo
A way forward?
ToDo
2장은 실험 동물이 학대 당하는 사례들을 소개하고 동물 실험이 왜 문제인지, 왜 안 바뀌는지,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2장과 3장은 인간의 종차별로 인해 동물에게 가해지는 고통이 너무나 크다는 점을 보여준다. 동시에 인간이 동물을 얼마나 잔인하게 대하는지 드러내서 독자들에게 충격을 주려는 목적도 가지고 있는게 아닐가 추측해본다. 그래야 바꿔야겠다는 결심을 할테니까. 2장 내용이 지나치게 잔혹해서 실험에 대한 내용은 최소한으로만 적겠다.
군사 목적 실험에서는 주로 원숭이 간혹 침팬지를 쓰는데, 지속적으로 전기충격을 가해서 동물이 원하는 행동을 하도록 훈련시킨다. 몇 주의 훈련이 끝나면 본격적인 실험을 시작한다. 본격적인 실험이란 예를 들면, 방사능이나 유독한 화학물질에 노출되었을때 훈련 받았던 행동을 얼마나 잘 유지하다가 죽는지를 측정하는 식이다. 원숭이나 침팬지를 쓰는 이유는 진화적으로 인간과 가까운 종이기 때문이다. 계통수 기준으로 보면 원숭이-고릴라-침팬지-보노보-인간 이런 순서로 서로 가깝다.
민간 분야의 실험도 잔인하긴 마찬가지다. 심리학 교과서(사회심리학, 발달심리학, 진화심리학)에서 봤던 실험들, 교양과학책에서 자주 나오는 실험들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지나치게 잔인해서 생략. 다만, 교과서들에는 이 실험이 이렇게 잔인한 과정을 거쳤다는 점에 대해 한 줄도 나와있지 않았던게 좀 충격이었다.
이어지는 내용은 동물 실험의 규모가 엄청나게 크다는 점, 대부분의 연구가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는다는 점,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실험 동물을 살아있는 생명이라기보다 단순한 도구 정도로 취급한다는 점, 그러한 연구 전통이 계속 이어진다는 점을 비판.
싱어는 또 대부분의 연구가 유의미한 결론을 내지 못하고 동물만 죽이고 끝나고, 일부 결론이 나더라도 지나치게 사소하다는 점도 문제라고 말한다. 공리주의자인만큼 기왕 고통을 주었으면 중대한 결론을 얻었어야 하는데 아무 이유 없이 혹은 너무 사소한 이유로 지나치게 큰 고통을 주었다는 점을 비판하는걸로 보인다.
한편, 싱어가 모든 종류의 동물 실험을 원천적으로 다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동물 실험이 정당한지 아닌지 구분하기 위해서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볼 것을 권한다:
생후 6개월이고, 고아이며, 심각한 뇌 손상을 입어서 이후 정상적인 신경 발달이 도저히 불가능한 어떤 아이가 있을 때, 이 아이를 해당 동물 실험에서 쓰는 것이 정당한가?
이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경우에만 그 동물 실험은 (적어도 그 대답을 한 사람의 내적 기준에서는) 정당하다고 볼 수 있다는게 싱어가 제시하는 기준이다. 생후 6개월인 이유는 그 정도 수준이면 다른 대형 영장류에 비해 인지적으로 더 뛰어나지도 않고, 고아인 이유는 그래야 가족들이 받는 고통을 빼고 생각할 수 있고(한편 대부분의 실험 동물은 어미로부터 강제로 격리되기 때문에 어미에게도 심각한 고통을 준다), 치료 불가능한 심각한 뇌 손상을 가정하는 이유는 그래야 이 아이의 미래에 가능성에 대해 덜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아이를 써서는 안되지만 동물을 쓰는건 괜찮다”고 대답한다면 그건 종차별(인간 종에 대한 특별한 취급)이라는게 싱어의 주장이다.
이 기준에는 모호한 회색 지대가 있을텐데 싱어는 이 회색 지대에 대해서는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인간이 지금 저지르고 있는 학대는 너무 선명한 검정색이라 회색 지대 근처에도 가지 않는게 대다수이고 이런 학대만 줄여도 세상이 크게 좋아질테니까. 즉, 원칙적으로 모든 동물실험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실험들을 고려한다면, 현실적으로는 모든 실험이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는 것이 싱어의 입장이다.
2장의 마지막 단락은 이렇게 끝난다:
실험 동물에 대한 학대는 종차별이라는 더 큰 문제의 일부일 뿐이기에 종차별 자체가 사라지지 않는 한 실험 동물에 대한 학대 문제도 없어지기 어려울 것이다. 분명 미래의 언젠가 우리 아이들의 아이들은 20세기에 실험실에서 벌어졌던 일들에 대해 읽으며, 우리가 로마 시대 검투 경기장이나 18세기 노예 무역에 대해 읽으며 느꼈던 충격을 똑같이 느끼게 될 것이다.
싱어가 사고하는 방식(공리주의에 입각하여 부당한 차별이 무엇인지 판단하기)으로 여러 종류의 차별(인종차별, 성차별, 연령차별, 종차별 등)의 적어도 일면은 일괄적으로 설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이런 사회 운동들이 서로 연합할 수 있었겠구나(동물+환경+여성=에코페미니즘, 인종+여성=블랙 페미니즘, 계급+페미니즘=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등) 하는 생각을 해봤다.
제3장. 공장식 축산에서는Down on the Factory Farm
3장에서는 공장식 축산 시스템에서 닭, 돼지, 송아지, 젖소, (소고기 생산용) 소의 사례를 각각 소개한 뒤에, 가축의 종류와 무관하게 일반적으로 벌어지는 학대들 - 운송 과정에서의 학대, 도축 과정에서의 학대, 뿔 제거/고환 제거/피부에 낙인 찍기 등 - 을 소개. 2장에 비하면 나은 편이지만 3장의 사례들도 매우 잔혹해서 간단히만 옮긴다.
닭은 움직이기 힘든 좁은 공간에서 자거나, 알을 낳거나, 사료를 먹을 수만 있다. 스트레스로 인해 공격성이 높아져서 다른 닭들을 부리로 공격하는데 이렇게 하면 공장 입장에서 생산성이 낮아지기 때문에 부리를 일부 제거한다. 부리 안에는 인간으로 치면 손톱과 살 사이의 민감한 부분에 해당하는 신경 조직이 있어서 평생 고통을 느끼게 된다. 배설물 처리 등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바닥도 그냥 구멍 뚫린 철창살로 되어 있는데 상당수 닭들은 발이 철창살아 엉겨 붙게 된다. 돼지, 젖소, 소, 송아지 순으로 점점 더 잔혹해지는데 생략.
돼지나 소의 경우 운송 및 도축 과정에서 추가적인 고통을 겪는다.
종교적인 이유(유대교와 이슬람교)에서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도축한 동물의 고기만 먹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기절시키거나 마취시키지 않고 도축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종교적인 이유에서 이렇게 도축된 고기 중 먹어서는 안되는 부위들이 제법 있기 때문에 이런 부위들은 (버리면 손해니까) 해당 종교와 무관하게 일반 제품으로 판매된다고 한다.
스웨덴을 포함한 몇몇 유럽 국가들이 그나마 축산에서의 학대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하고, 미국은 입법 로비 단체들의 힘이 워낙 막강해서 법제화가 대단히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고. 한국에 대해서는 특별히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다른 나라들은 미국과 비슷하거나 심한 수준”이라고 말한다. 한국의 상황에 대해선 대한민국 도축 통계 참고.
싱어는 동물의 처우에 대해 많은 분량을 들여 설명하고 있지만, 공장식 축산을 유지하면서 복지만 개선해보자는 식의 타협적 입장을 취하는 것은 아니다. 싱어는 “인도적인 축산”도 좀 더 나아진 종차별일 뿐이라고 말한다:
(인도적인 축산은) 계몽적이고 더 인도적인 형태일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차별이라는 점엔 변함이 없다. 아직까지 어떤 국가의 정부도 인간의 이익에 비해 동물의 이익이 덜 중요하다는 관념에 의문을 제기한 바 없다. 이슈는 항상 ‘피할 수 있는’ 고통에 맞춰져 있는데, 이 말은 동일한 양의 동물 제품들이 생산된다는 조건 하에, 그리고 비용이 크게 증가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피할 수 있는 고통으로 한정된다. 인간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동물을 수단으로 쓸 수 있고, 동물의 살을 비롯한 인간의 각종 선호를 만족시키기 위해 동물을 기르고 죽여도 된다는 가정들은 여태 도전받은 바가 없다.
사족으로, 중간에 닭에 대한 내용에서 반가운 이름을 둘 발견해서 메모해둔다.
첫번째는 콘라트 로렌츠. 동물행동학의 창시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이다. 조류에서의 각인imprinting에 대한 연구가 특히 유명하다. 이기적 유전자로 유명한 리차드 도킨스의 스승격(직계 스승은 니코 틴버겐이고, 로렌츠는 틴버겐의 동료)인 사람이기도 하다. 다만 나치 부역자였던 점이 아쉽다.
다른 한 사람은 매리엔 도킨스인데 리차드 도킨스의 전배우자였던 학자다. 이 분도 도킨스와 마찬가지로 옥스퍼드에서 동물행동학을 공부했다. 이 분은 특히 이후에 동물의 의식에 대한 연구와 병행하여 동물 복지 운동을 하기도 했다.
제4장. 채식주의자 되기Becoming a Vegetarian
4장에서는 인간 사회에 만연한 종차별에 대항하기 위한 사회 운동이자 개인적 실천 방법으로 채식주의를 제안한다. 채식을 통해 종차별을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식량난도 해결하고 환경 문제에도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 실용적인 내용도 담고 있는데, 점진적으로 채식주의자가 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은지, 뭘 먹어도 되고 뭘 먹으면 안되는지, 왜 되고 왜 안되는지 등을 설명한다.
우선 채식주의가 효과적인 사회 운동인 이유에 대한 설명은 이렇다.
정치인들이 동물권 보호를 위해 여러 입법 활동을 하게끔 장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방식만으로는 어렵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동물을 착취하여 이익을 얻는 산업이 워낙 크게 발달해있고 이들이 다양한 로비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 몇몇 거대 동물권 단체들은 인기 있는 동거 동물(개, 고양이)이나 우리가 대체로 먹지 않는 동물(북극곰, 원숭이 등)의 복지에 지나치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고. 이런 점을 고려할 때 가장 강력한 공격은 금전적 동기를 줄이는 것, 즉 육식을 줄이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두번째 이유는, 다른 상징적 운동과 달리 채식운동은 거시적인 면에서 실패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내가 안먹은 만큼의 생명이 겪을 고통을 줄인 것이라는 점이다.
다음 주제는 공장식 축산을 없애면 식량 생산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그렇게 되면 인류의 식량난이 더 심각해지지 않느냐는 문제 제기에 대한 반론이다. 싱어에 따르면, 식물을 인간이 직접 먹는 것에 비해서 식물을 소에게 먹이고 소를 인간이 먹는 식으로 한 단계를 더 거치게 되면 효율이 극도로 낮아지고, 그 과정에서 더 많은 물을 사용하고, 사료용 작물을 키우느라 더 많은 열대우림을 파괴하고, 공장식 축산의 폐기물(주로 배설물)로 인해 물이 더 오염된다. 구체적으로는 미국인들이 육류 소비를 10%만 줄이면 6천만명이 먹을 식량을 더 생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좀 더 상세한 최근 계산은 Efficiency of plant-based diet 참고)
그 다음 주제는 영양. 인간은 계통 분류상 잡식성 동물이니까 채식만 하면 영양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다룬다. 역사적으로 간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레프 톨스토이, 조지 버나드 쇼 등이 채식을 했으나 건강하게 오래 살았다고 한다. 영양학적으로는 식물을 통해 섭취하기 어려운 유일한 영양소는 비타민 B12인데 이 조차도 일부 발효 식품을 통해 섭취 가능하고 혹시 그게 어려우면 비타민 보충제를 먹으면 된다고 설명.
영양에 대해서는, 사실은 육식에 비해 채식이 건강에 여러 이점을 준다고 하면서도 그런 점들에 대해서는 설명을 길게 하지 않고 ‘육식에 비해 채식도 나쁘지 않다’ 정도로만 최소한으로 설명하려고 노력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 이유는 채식의 장점을 길게 설명할수록 동물의 이익이 아니라 인간의 이익을 위해 채식을 하라는 식의 주장으로 오인될 소지가 있다는 점을 걱정했기 때문. (채식, 특히 자연식물식과 건강에 대해서는 무엇을 먹을 것인가 참고)
마지막 주제는, 뭘 먹어야 하는지, 뭘 안먹어야 하는지, 왜 그런지에 대한 설명. 기본 원칙은 1장에서 소개한 “모든 지각이 있는 존재에 대한 동등 고려의 원칙”이다. 고통이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존재라면 그 존재의 이익(고통을 줄이고 쾌락을 늘리기)에 대해 동등하게 고려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생물학적 지식에 근거해서 저자가 그은 흐릿한 선은 “새우와 굴 사이에 어딘가”라고. 그런데 이건 1판(1975년)에서의 설명이었고, 개정판(2009년)에서는 굴이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는걸 완벽하게 확신하기는 어렵고 굴을 안 먹는 일 쯤은 상대적으로 쉬우니까 어지간하면 그냥 굴도 먹지 않는게 좋겠다는 식으로 바뀌었다. 저자가 중요하게 여기는건 각자 저 원칙에 기반하여 실천의 범위를 정하는 것이지 저자가 제안한 기준을 정확히 지키는게 아니라고도 말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의 예시는 이렇다: 소/닭/돼지 등 육류와 각종 생선 먹지 않기, 달걀의 경우는 방목된 농장에서 얻은 달걀만 먹고 그렇지 않으면 피하기, 우유 마시지 않기, 유제품은 되도록 피하되 피하기 어려우면 그냥 먹기(워낙 많은 제품에 우유가 들어 있어서 이걸 몽땅 피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이걸 각자 사정에 따라 단계적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지금은 유제품을 대체할 수 있는 옵션이 당시에 비해 훨씬 다양해졌다.)
싱어는 도덕적 완결성을 추구하느라 현실에서의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상황을 가장 경계한다. 그가 생각하는 동물 해방 운동의 목적은 이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모든 악행으로부터 완전무결 격리하여 도덕적으로 완벽한 인간이 되게 하는 만드는 것이 아니다. 즉 개별 참여자가 ‘아 나는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건 중요하지 않다. 동물 해방 운동의 목적은 비인간 동물에 대한 부당한 억압과 이들이 겪는 고통을 현실적으로 줄여나가는 것에 있다.
제5장. 인간의 정복Man’s Dominion
5장에서는 전세계 거의 모든 인간이 종차별자라고 규정하고 왜 종차별이 이렇게 만연하게 되었는지를 추적한다. 5장을 읽으며 저자가 기독교에 굉장히 비판적이라는걸 느꼈는데, 찾아보니 역시나 무신론자였고 그냥 무신론자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무신론자라고 한다. 그걸 감안하고 읽으면 좋겠다.
싱어의 목적은 종차별에 대항해서 싸우는 동물 해방 전선animal liberation front을 장려하는 것이고, 이 책에서는 크게 두 가지 전략을 쓴다. 2장, 3장은 전면 공격(지금 행해지는 종차별의 잔혹함을 고발하기)이고, 5장은 후면 공격(종차별의 사상적/역사적 기반이 얼마나 허술한지 드러내기)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러한 목적에서 종차별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서술한다.
싱어는 종차별의 역사를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 설명. 기독교 이전pre-christianity, 기독교 시대, 계몽주의 시대 및 그 이후. 보통의 유럽중심주의적 역사관은 그리스 고졸기, 그리스 고전기, 로마시대, 중세시대, 르네상스, 근대, 현대,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데, 이거랑 엮어보자면 “기독교 이전”은 고졸기/고전기에 대응되고, 기독교 시대는 로마시대/중세시대에 연결되고, 계몽주의 시대 및 그 이후는 르네상스/근대/현대에 연결되는 식이다.
기독교 이전
종차별 관점에서 기독교 이전 시기 서양인들의 동물에 대한 태도는 두 가지 사상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하나는 유대교 전통, 다른 하나는 고대 그리스 전통. 유대교 전통의 창조 설화(기독교 구약 창세기)에 의하면 동물은 인간을 위한 수단으로 창조되었고, 인간 남성이 동물과 여자 때문에 타락했다고 주장하며, 타락한 인간은 부끄러움을 알게되어 “동물 가죽” 옷을 입고, 추방된 인간의 자손들은 동물을 신에게 제물로 넘기고, 신은 동물을 홍수로 죽이고 유황불로 죽인다. 저자가 보기에 유대 경전은 심각하게 종차별적이다.
다른 하나는 고대 그리스의 사상. 고대 그리스의 사상은 (역시 종차별 관점에서) 둘로 나뉘는데 하나는 피타고라스 학파의 전통, 다른 하나는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전통이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종교적 성격이 강했고(원래 수학은 신비로운 면이 있어서 수학과 종교는 의외로 잘통한다) 특히 죽은 인간의 영혼이 동물에 깃든다고 믿었기 때문에 동물에게 자애로운 편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전통은 동물이 인간과 다르다고 보았다. 그런데 아쉽게도 플라톤-아리스테텔레스 전통이 서양 철학의 주류가 된다.
기독교
저자는 로마 제국의 군사주의적 문화(약자/노예/포로/동물은 무가치)와 유대교+아리스토텔레스 전통이 결합되면서 우리가 소위 기독교 문화라고 하는 줄기가 만들어진다고 본다. 로마 제국은 원래 사람과 사람, 사람과 동물, 동물과 동물이 싸워서 서로 죽이는걸 스포츠로 생각하는 문화가 있었다. 그런데 유대교+아리스토텔레스 전통의 영향으로 4세기에 이르러서는 사람과 사람이 싸우는 스포츠(영화 글레디에이터에 나오는)는 없어졌다.
중세 시대에 이르면 기독교 철학이 크게 발전하는데 동물권과 관련해서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이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아퀴나스의 윤리 체게에 의하면 죄에는 세 종류가 있다. 신에 대한 죄, 자신에 대한 죄, 다른 사람에 대한 죄. 문제는 이 분류에 의하면 동물에 대한 학대는 (인간과 관련이 없다면) 들어갈 자리가 없어진다. 이 사상의 영향은 정말 오래 지속되는데, 19세기 중반 교황청의 입장문도 이 사상에 기반해서 동물권 관련 입법을 반대했다고 한다. (교황청의 입장은 1988년 요한 바오로 2세에 이르러서야 변하기 시작)
계몽주의 및 그 이후
중세가 끝나고 르네상스 휴머니즘이 도래하면 신 대신 인간 중심의 사유에 집중하게 되었는데, 인본주의란 말 그대로 “사람”에 대한 것일 뿐 둥물이랑은 상관이 없으니 동물권이 크게 나아지지는 않는다. 그래도 몇몇 사람들이 눈에 띈다고 하는데 책에 소개된 인물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다. 동물권을 이유로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동물권 관점에서 이 시기에 가장 나쁜 영향을 끼친 사상가는 데카르트다. 왜냐하면 데카르트는 기계론자이면서 동시에 기독교인었기 때문에, 기계론과 기독교를 통합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원론(물질과 영혼)을 주장하게 되었고, 세상 만물은 기계인데 인간만이 유일하게 신에게 부여받은 영혼을 가진다고 말해버린다. 즉, 동물은 조금 복잡한 시계에 불과하다. 영혼이 없으면 의식이 없고 의식이 없으면 고통을 못 느끼니까 마음대로 실험을 해도 되는 것. 이 시기부터 동물 실험이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동물실험은 잔혹했지만(살아있는 강아지의 팔과 다리를 못으로 고정하고 산 채로 해부. 하지만 이런 정도는 2장과 3장에 나오는 사례에 비하면 약과다), 그 덕분에 “동물이 정말 기계일까? 아닌 것 같은데?” 하는 의심을 품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고.
1859년에는 다윈의 종의 기원 출간. 그리고 약 10년 후 다윈은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을 발표하고 조금 지나서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에 대하여를 출판. 이 세 책의 메시지를 합치면, 모든 현생종은 하나 혹은 소수의 종에서 시작하여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 과정을 거치며 서서히 분화되었고(종의 기원), 인간도 역시 마찬가지이머(인간의 유래), 인간과 대형 영장류 사이에는 상당히 많은 유사성이 있다(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에 대하여)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이 사상적 변화를 보통 다윈주의 혁명이라고 부른다.
20세기에 이르면 상당수의 대중이 인간과 동물 사이에 근본적 차이가 없음을 적어도 이성적으로는 알게 되지만, 동물을 수단으로 이용해온 오랜 종차별적 습관을 현실에서 없애지는 못한 채로 애매하게 지내게 되는데, 이 상태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게 저자의 견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변명의 시대”라고 부를 수 있다.
제6장. 오늘날의 종차별Speciesism Today
6장에서는 동물권 운동에 대한 저항과, 동물권에 대한 반대 논리, 이에 대한 저자의 반론을 소개한다.
문화와 교육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 아이들이 독립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되기 훨씬 이전에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동물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된 태도를 주입하는 점을 비판한다. 동화에 나오는 귀여운 동물이거나, 우리가 먹는 고기 이다. 페미니스트들이 여성의 성역할을 강화하는 동화나 영화를 비판하고 다양한 여성성을 보여주는 동화를 제안하는 것과 유사하게, 동물권 운동가들도 동물들이 인간과 동등한 생명이며 지각있는 존재라는 점을 아이들이 배울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을 한다.
미디어도 공장식 축산이나 동물 실험의 현황에 대해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종차별주의자들의 첫번째 방어선은 ‘무지’이다. 몰랐다고 주장하거나, 설명하려해도 듣지 않고 무지한 상태를 유지하려 애쓴다.
또다른 문제는 “사람인 우선”이라는 태도. 이 태도는 그 자체로 종차별적이다. 게다가 동물에 대한 인간의 억압은 대체로 동물과 인간 사이의 근본적인 이익 충돌에서 비롯된다기 보다 인간이 동물을 수단으로 보는 태도에서 기인한다. 예를 들어 채식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채식을 하기만 해도 동물에게 가해지는 가장 큰 억압 중 하나인 공장식 축산을 효과적으로 줄여나갈 수 있다.
고상한 인간 대 잔인한 짐슴이라는 잘못된 편견도 종차별을 유지하는 동력 중 하나다. 하지만 전쟁 등을 고려하면 인간이야말로 가장 잔인한 종 중 하나다. 인간은 인간의 야만성은 과소평가하고 동물의 폭력성은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또한 종차별에 불과하다.
인간이 동물을 먹는 것은 자연의 질서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당위를 설명하기 위한 근거로 자연을 운운하는 것은 현명한 전략이 아니다. 자연스러운 것을 모두 그대로 따른다면 비극적인 세상이 될테니까. 예를 들어 인류 역사 상 전쟁이 없었던 시절은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인간에게 있어서 전쟁은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모두 자연스러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 전쟁터로 달려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본문에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런 종류의 오류를 자연주의적 오류라고 부른다. 오로지 사실에 대한 명제만을 근거로 가치에 대한 명제를 도출하면 자연주의적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
인간이 소를 먹기 때문에 소의 개체수가 지금과 같이 많아진 것이니 육식은 소에게 이득을 준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인간이 육식을 하지 않았더라면 태어나지도 못했을 소들이 태어났으니 좋은 일이라는 주장이다. 이 주장에 대해 싱어의 여러 반론 중 하나가 재미있어서 소개해보려고 한다.
이 사람의 주장대로 생명이 더 많이 태어나는게 좋은 일이라면, 기왕이면 소보다는 인간이 더 많이 태어나는 편이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육식을 옹호하는 사람이므로 소보다 인간이 더 중요하다고 여길 것이 분명하니까. 사람이 더 많이 태어나려면 식량이 필요한데, 식량을 가장 많이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은 채식을 하는 것이다. 식물을 인간이 직접 먹는 편이, 식물을 소에게 먹이고 소를 인간이 먹는 편에 비해서 훨씬 더 효율적이기 때문. 따라서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주장을 최대한 관철하기 위해서라도 당장 육식을 그만두고 채식을 해야한다.
마지막으로 싱어는, 자신이 이 책을 쓰면서 최대한 이성에 호소하여 논리를 전개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을 다시 강조한다.
나는 감정이나 감상보다는 이성에 호소했다. 그렇게 한 이유는 내가 다른 동물에 대한 친절한 마음이나 감상의 중요성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성이 더 보편적이고 호소력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이러한 태도는 가장 최근 저서인 The most good you can do에서도 일관되게 유지된다. 싱어는 이성의 힘으로 세상을 좋아지게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있는다.